상처받는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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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31병원은 국내 최초로 설립된 인공지능 전담(30계열)병원입니다. 총 9개의 진료과로 구성되어 있으며 국내 최고의 의료진을 갖추고 있습니다.

31병원의 진료과는 아래와 같이 구성되어 있습니다.

  • 기초클리닉
  • 비전클리닉 (비전내과, 비전외과)
  • 신호(SSVT – speech, sound, vibaration, time series)클리닉 (신호내과, 신호외과)
  • 언어클리닉 (언어내과, 언어외과)
  • 멀티지능클리닉 (정보 융합, 판단, 기타 이상 증세)
  • 지능행동클리닉

내과에서는 문제가 발생한 인공지능 모듈의 증세를 판단하고 주로 메디 데이터를 주입하여 재학습시키는 과정을 통해 증상을 치료합니다. 외과에서는 인공지능 모듈의 코드를 직접 수정하여 정상 기능으로 회복시킵니다. 31병원의 내과 계열에서 처방하고 있는 메디데이터는 세계적으로도 인정받는 인공지능 전용 데이터 신약으로서, 메디 데이터로 추가학습 과정을 진행하면 외과적 조치를 필요로 하지 않는 대부분의 이상증세를 회복시킬 수 있습니다.
또한 31병원은 국내 최초로 인간 의료진과 인공지능 의료진을 모두 갖추고 있어 선택적으로 진료를 받으실 수 있습니다.

Scene #1

“혹시 예전에 우리 Pexa가 좀 이상하다고 하지 않았었어?”

“응, 가끔 대답을 잘 안할 때도 있고… 지난 번에는 내 친구가 집에 처음 왔는데도 별 반응이 없더라고. 근데 별로 크게 이상하지는 않아”

“낯선 사람이 왔는데 반응이 없었다고?”

“그러게, 집에는 처음 왔지만 가끔 온라인으로 만나는 친구라서 이미 알고 있었나…?”

남편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지만, 설희는 더 큰 문제가 생기기 전에 Pexa의 상태를 검사해 보는게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네, 31병원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아, 저희가 사용 중인 인공지능의 검진을 좀 받아보려구요.”

“네, 일단 사용 중이신 시스템의 ID를 입력해 보시겠어요?”

설희는 지금 자신과 대화를 나누는 상대방이 사람인지 인공지능인지 궁금해졌다. 그러나 그게 뭐가 중요하겠어.

“고객님의 시스템은 비교적 구형이라 원격으로 진료할 경우에는 정확한 검진이 어렵습니다. 시스템의 중앙 모듈카드를 가지고 직접 내원하실 수 있을까요?”

“알겠습니다. 언제, 어디로 가면 되나요?”

“오늘 중으로 저희 병원 3층에 있는 기초클리닉으로 오셔서 6번 단말기에 카드를 꽂으시면 됩니다.”

설희는 병원의 규모가 생각보다 작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부분 온라인 진료를 받기 때문일 거라고 생각하며 단말기에 카드를 꽂고 인간 의료진을 선택했다.

약 1분 정도의 시간이 흐르자, 설희의 휴대폰이 울렸다.

“PA3456-0034 의 진료를 맡은 닥터 최입니다.”

“네, 안녕하세요.”

“PA3456-0034의 이름이 따로 있나요?”

“네, Pexa라고 부릅니다.”

“그렇군요. Pexa에 대한 모든 검사를 완료했습니다. 얼굴 인식 모듈에 약간의 문제가 있어 보였을 듯 한데요, Qrec사의 데이터로 학습된 모듈들이 가끔씩 나타내는 문제입니다. Qrec사 데이터의 커버율이 약 94%정도라고 알려져 있는데요, 나머지 6%정도에 해당하는 데이터에 대한 인식률이 낮게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Qrec사에서도 해당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전용 메디 데이터를 준비 중이라고 하니 특별히 외과적인 조치를 취하거나 저희가 처방하는 메디 데이터를 주입하는 것 보다는 Qrec사의 전용 메디 데이터가 출시될 때까지 조금 기다려 보시면 어떨까 합니다.”

설희는 남편의 친구가 6%에 해당하는 보기 드문 얼굴형을 가졌다는 생각을 하니 웃음이 나왔다.

“그리고 가끔 대답을 하지 않는 증상은… “

Scene #2

“31병원에서 검진을 좀 받아보는게 어때?”

최근 몇 주동안 자신이 골라내야 할 불량품을 놓치는 경우가 많아서 재민의 도움을 많이 받아야 했던 Quartz는 내장 inspection 모듈이 자가 측정한 수치 상으로는 별다른 이상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종합적인 검사를 받을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럼, 내가 검진받을 때 모니터링해 주겠어?”

“OK”

재민이 자신의 고글을 Quartz의 모니터링 슬롯에 연결하자 Quartz가 31병원의 채널에 접속하는 과정이 재민의 고글에 모두 나타났다.

“31병원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저희 병원은 인간 보호자가 있을 경우 모든 검진 상황에 대한 정보를 인간의 눈에 최적화된 UI를 통해 추가적으로 제공해 드리고 있으며… “

“비전내과 검진 완료, 신호내과 검진 완료, 언어내과 검진 완료, 멀티지능클리닉 검진 중… “

검진이 이루어지는 동안 Quartz는 아무 말도 없었다.

재민은 다른 과의 검진이 20초만에 끝난 것에 비해 멀티지능클리닉 검진에 1분 이상 시간이 소요되고 있다는 점이 마음에 걸렸다.

약 3분의 시간이 더 흐른 뒤에 멀티지능클리닉 검진까지 완료되자 모든 검사 결과가 전송되었다.

“괜찮아?”

“………..”

“왜 그렇게 말이 없었어”

“검진 도중에는 말을 하지 말라더군. 어쨌든 검사가 끝났으니 빨리 접속을 끊고 싶네. 보호자도 승인해야 접속이 해제된다는군”

“아, 그렇군, 몰랐네.”

재민이 승인버튼을 클릭하자 고글에는 Quartz의 검사결과와 조치결과가 출력되었다.

“비전시스템, 신호시스템, 언어시스템 검사 결과에서는 이상을 발견하지 못함. 단, 언어시스템의 출력이 최종 판단 시스템에 입력된 후에 미세한 노이즈가 포함된 흔적을 확인함. 이 노이즈가 최종 판단 시스템의 동작에 영향을 줄 수 있으므로 53B형 메디 데이터를 최종 판단 시스템의 3C에서 8C레이어에 주입하였음. 주입된 메디 데이터가 각 레이어의 파라메터에 완벽하게 반영되는 데에는 약 14분 41초가 소요될 예정이므로 16시37분 32초까지는 최대한 대화를 하지 않도록 유도해야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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