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정신외과 병동 사람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사람은 누구나 지우고 싶은 기억이 있다. 만약, 먼 훗날에 기술이 매우 발달하여, 지우고 싶은 기억만 콕 집어내어 지울 수 있다면 우리 사회는 어떻게 될까? 에피소드 ‘정신외과 병동 사람들’ 은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의 아픔을 지우기 위해 정신외과를 찾아간 사람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얼마나 아픔이 컸던지, 그는 부작용의 위험성을 알면서도 시술을 받는다.

이 이야기에서 언급된 시술의 실현 가능성은, 세부 기억의 저장위치와 저장방식을 완벽히 알고 있음을 전제로 한다. 이것은 현재의 과학기술로는 아직 불가능한 일이며, 가능하게 될 정도로 기술이 발전하는데 얼마나 오랜 시일이 걸릴 지 예측하기도 어렵다. 물론, 기억을 저장하는 과정이 뇌의 어떤 부위에서 이루어지고, 대략적으로 어떠한 종류의 기억이 어디에 위치하는가에 대한 연구결과들은 현재에도 존재하지만 [1, 2] , 특정 기억이 저장된 위치를 pin-point로 찾아내는 것은 먼 미래의 일이다.

그러나, 기술은 발전하기 마련인데, 수십 년 전에 우리가 알고 있던 뇌에 대한 지식과 현재의 지식 사이에 큰 차이가 난다는 점을 고려해 보면, 생각보다 이른 시간 내에 이런 기술이 상용화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중요한 것은, 새로운 기술은 반드시 부작용을 동반할 위험이 있다는 점이다. 에피소드 ‘정신외과 병동 사람들’에서는 기억을 절제한 후 의도하지 않게 감정까지 사라지는 부작용이 나타난 모습을 표현하고 있는데, 생각해 보면 이러한 부작용의 원인은 간단하다. 특정 기억이 저장된 위치만 시술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거나, 특정 기억을 저장하는 영역이 뇌의 다른 기능을 담당하는 영역과 서로 얽혀있다는 점을 놓친 것이다.

그렇다면, 뇌가 정보를 저장하는 방식에 대해 완벽하게 알게 되고, 기억절제시술의 정확성도 완벽해지는 시대가 도래하여 원하는 기억만을 지울 수 있게 된다면, 정말 행복해질까?

기본적으로는, 정신질환이나 인지장애를 겪는 사람들에게는 이러한 기술이 구세주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너무나 강렬하게 뇌 속 깊이 뿌리박힌 기억에 의해 일상생활이 불편해진다면, 그 기억을 지우게 되면 한결 나아질 것 같다. 자신도 모르게 정신적 활동을 방해하는 묵은 기억을 없앨 수도 있을 것 같다. 현재의 기술로는 약물치료나 심리치료를 할 수 밖에 없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PTSD)에 대한 치료 기술 [3] 또한 획기적으로 발전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기술은 인지장애를 겪는 사람들의 뇌를 치료하는 기술의 발전을 불러일으켜 인류 최대의 적 중의 하나인 치매[4]를 극복하는 데에도 크게 공헌할 수 있을 것 같다. (기억을 지울 수 있다면 재활성화할 수도 있지 않을까? 떠오르지 않는 기억이 뇌 속에서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면 말이다.)

그러나, 이러한 기술이 잘못 활용된다면 어떤 결과를 맞이하게 될까? 다른 사람의 특정 기억을 지워버려서 있던 사실을 없던 것으로 탈바꿈시켜 버리거나 자신의 특정 기억을 일부러 지워버리고는 모른 척 하는 일이 생길 수도 있을 것 같다. 존재하지 않는 기억을 실제로 있었던 것처럼 느끼게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물론, 이런 상황이 되면, 이러한 오남용을 막거나 오남용에 의한 부작용을 최대한 극복할 수 있도록 하는 대응 방법도 같이 발전할 듯 하다.

어쨌든, 특정 기억을 지울 수 있다면, 나는 과연 어떤 기억을 지우고 싶을까? 존재하지 않는 기억을 심을 수 있다면 어떤 세상이 올까? 즐거운 상상과 무서운 상상을 모두 해보자.

References

  • [1] https://academic.oup.com/cercor/article/25/12/4748/310828
  • [2] https://qbi.uq.edu.au/brain-basics/memory/where-are-memories-stored
  • [3] http://sns.iseverance.com/post/230
  • [4] https://www.alz.org/alzheimers-dementia/what-is-dement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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