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촉촉한 인공지능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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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인공지능에게 질문을 던지고 답을 얻습니다. 

딱딱한 정보를 찾기도 하지만, 때로는 농담을 던지기도 하죠. 

시를 써달라고 할 수도 있고, 그림을 그려달라거나 음악을 만들어 달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인생의 중요한 결정을 하는 순간에 인공지능에게 답을 요구할 수도 있습니다.

질문을 던지면 인공지능은 아주 빠른 시간 안에 답을 해줍니다. 

사람이라면 불가능한 속도지요.

심지어 조금씩 내용을 바꾼 질문을 계속 던져도 지치지 않고 대답을 해주고, 

어떤 질문을 더 하면 좋을 지에 대해서 친절하게 추천해 주기도 합니다. 

사람이라면 아무리 친한 사람이라고 해도 이렇게 하기 어렵죠.

그러다 보니 굳이 스스로 직접 생각을 하지 않아도, 쉽게 답을 얻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여러가지 대답들 중에서 고르기만 하면 되죠. 

우리가 할 일은 약간의 타이핑과 클릭 뿐입니다.

그런데, 꽤 오랜 기간 인공지능을 써오면서 문득 이런 의문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쉽게 얻은 대답들이 우리의 기억에 얼마나 오래 남을까?”

“인공지능이 던져준 대답들이 나에게 꼭 맞는 것일까?”

어차피 인공지능은 제게만 답을 해주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열심히 같은 방법으로 답을 만들어 줄 테니까 말이죠. 

어렸을 적에, 오랫동안 Eagles의 ‘Hotel California’라는 곡에 푹 빠져 지냈던 적이 있습니다. 

이유는 모르겠는데, 이 곡을 들을 때마다 가슴 한 구석에서 무언가 끓어오르는 것이 있었지요. 

가사를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했었는데도 불구하고요.

저는 가사를 정확하게 이해해 보려고 노력했었습니다. 

이미 알려진 다른 해석들도 많이 찾아봤지요. 

이렇게 하면서 곡에 대한 이해도가 깊어졌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열심히 찾아본 그 해석들이 왠지 제 마음을 울리지는 않았습니다.

그 해석들이 정확한 것이라고 해도 말이죠.

널리 알려진 해석을 찾았을 때보다, 

누구나 자기만의 느낌으로 해석할 수 있도록

열린 해석을 염두에 두고 작곡자가 곡을 만들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훨씬 더 기뻤습니다. 

제가 이 곡을 듣고 느꼈던 감정, 제 마음대로 떠올렸던 장면과 이야기들에 대해 작곡자로부터 허락을 받은 느낌이라고 할까요.

저는 검색엔진이나 인공지능을 통해 찾아보게 된 의미를 ”메마른 의미“라고 부릅니다. 

이와 달리, 제가 제 마음의 방향을 따라 스스로 떠올린 기억들과 감정들을 ”촉촉한 의미“라 부르지요. 

촉촉한 의미란,

스스로 떠올리기는 했지만

제 마음 속에서 꺼냈다는 것 외에는

정확한 근원을 알기 힘든 것들에 의해 촉촉하게 젖어있는 것들이지요.

그리고 점점 나이가 들면서 알게 된 것이 또 하나 있습니다. 

세상과 접하는 매 순간마다 저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수많은 ”촉촉한 질문“들을 하고 

”촉촉한 의미“들을 느끼고 있다는 사실을요. 

그리고 이러한 것들은 온전히 저만의 것이며, 이것들 중에는 엄청나게 아름답고 소중한 것들이 많다는 것을요.

저의 존재를 가장 잘 표현해 주는 것들 중의 하나는, 

제가 스스로 느낀 것으로 촉촉하게 적신 질문을 하고, 

직접 제 마음 속에서 끌어올린 것들로 촉촉하게 대답을 한 것들이 아닐까 합니다. 

이와 달리, 외부에서 찾아 얻어낸 메마른 대답들은 촉촉함을 전혀 담아내지 못하지요.

스스로 느낀 촉촉한 질문과 의미들이 흥미로운 가장 큰 이유는, 

이렇게 제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솟아오른 질문들을 깊이 사랑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온전히 저만의 질문이니까요. 

만약 그러한 질문에 스스로 답을 내게 되면, 그 대답 또한 사랑하게 되지요. 

완벽하지 않을 지는 모르지만, 그저 제가 스스로 낸 것이어서 사랑스러운 대답이지요.


사랑을 느낀 것들이 금방 잊혀질까요?

어차피 인공지능을 사용하지 않을 수 없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인공지능에게는 그저 ”메마른 의미“만 요구하세요. 

”촉촉한 의미“까지 인공지능에게 요구하거나 의존하지는 마세요.

인공지능에게는 촉촉한 질문과 대답, 촉촉한 의미를 느끼고 말할 능력이 없습니다. 

흉내만 낼 뿐이지요. 

자신의 마음 속, 알 수 없는 어딘가에서 솟아나는 것들만이 

우리의 마음을 촉촉하게 적셔주고 우리 자신의 정체성을 만들어 줄 수 있습니다. 

완벽하게 정체를 설명할 수는 없지만 아름답고 촉촉한 것들, 

어쩌면 우리는 이런 것들을 통해 우리의 존재를 스스로 가꾸어가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아시나요?

인공지능과 달리 우리의 뇌는 촉촉하게 젖어 있습니다.

메마른 인공지능 때문에 촉촉함이 주는 특권을 놓쳐서는 안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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