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인공지능에게 질문을 던지고 답을 얻습니다.
딱딱한 정보를 찾기도 하지만, 때로는 농담을 던지기도 하죠.
시를 써달라고 할 수도 있고, 그림을 그려달라거나 음악을 만들어 달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인생의 중요한 결정을 하는 순간에 인공지능에게 답을 요구할 수도 있습니다.
–
질문을 던지면 인공지능은 아주 빠른 시간 안에 답을 해줍니다.
사람이라면 불가능한 속도지요.
심지어 조금씩 내용을 바꾼 질문을 계속 던져도 지치지 않고 대답을 해주고,
어떤 질문을 더 하면 좋을 지에 대해서 친절하게 추천해 주기도 합니다.
사람이라면 아무리 친한 사람이라고 해도 이렇게 하기 어렵죠.
–
그러다 보니 굳이 스스로 직접 생각을 하지 않아도, 쉽게 답을 얻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여러가지 대답들 중에서 고르기만 하면 되죠.
우리가 할 일은 약간의 타이핑과 클릭 뿐입니다.
–
그런데, 꽤 오랜 기간 인공지능을 써오면서 문득 이런 의문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쉽게 얻은 대답들이 우리의 기억에 얼마나 오래 남을까?”
“인공지능이 던져준 대답들이 나에게 꼭 맞는 것일까?”
어차피 인공지능은 제게만 답을 해주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열심히 같은 방법으로 답을 만들어 줄 테니까 말이죠.
–

–
어렸을 적에, 오랫동안 Eagles의 ‘Hotel California’라는 곡에 푹 빠져 지냈던 적이 있습니다.
이유는 모르겠는데, 이 곡을 들을 때마다 가슴 한 구석에서 무언가 끓어오르는 것이 있었지요.
가사를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했었는데도 불구하고요.
–
저는 가사를 정확하게 이해해 보려고 노력했었습니다.
이미 알려진 다른 해석들도 많이 찾아봤지요.
이렇게 하면서 곡에 대한 이해도가 깊어졌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
그러나, 열심히 찾아본 그 해석들이 왠지 제 마음을 울리지는 않았습니다.
그 해석들이 정확한 것이라고 해도 말이죠.
–
이 곡을 들을 때마다 저는 어두워진 추운 겨울 밤, 산길 속을 걷다가 만난 작은 호텔을 떠올렸습니다.
술과 커피, 약간의 음식을 제공하고, 잠도 잘 수 있는 그런 곳이죠.
우연히 들른 그 곳에 들어서면 커피를 끓이고 있던 주인이 저를 맞이합니다.
그는 저에게 은은한 향이 나는 커피 한 잔을 내어주었고,
우리는 인생과 역사, 철학에 대해 이야기하였습니다.
몸을 충분히 녹인 제가 일어서려고 하자, 그의 눈빛이 살짝 변하죠.
–
“어이, 친구, 인생에 공짜는 없다네.”
–
널리 알려진 해석을 찾았을 때보다,
누구나 자기만의 느낌으로 해석할 수 있도록
열린 해석을 염두에 두고 작곡자가 곡을 만들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훨씬 더 기뻤습니다.
제가 이 곡을 듣고 느꼈던 감정, 제 마음대로 떠올렸던 장면과 이야기들에 대해 작곡자로부터 허락을 받은 느낌이라고 할까요.
–
저는 검색엔진이나 인공지능을 통해 찾아보게 된 의미를 ”메마른 의미“라고 부릅니다.
이와 달리, 제가 제 마음의 방향을 따라 스스로 떠올린 기억들과 감정들을 ”촉촉한 의미“라 부르지요.
–
촉촉한 의미란,
스스로 떠올리기는 했지만
제 마음 속에서 꺼냈다는 것 외에는
정확한 근원을 알기 힘든 것들에 의해 촉촉하게 젖어있는 것들이지요.
–
그리고 점점 나이가 들면서 알게 된 것이 또 하나 있습니다.
세상과 접하는 매 순간마다 저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수많은 ”촉촉한 질문“들을 하고
”촉촉한 의미“들을 느끼고 있다는 사실을요.
그리고 이러한 것들은 온전히 저만의 것이며, 이것들 중에는 엄청나게 아름답고 소중한 것들이 많다는 것을요.
–
저의 존재를 가장 잘 표현해 주는 것들 중의 하나는,
제가 스스로 느낀 것으로 촉촉하게 적신 질문을 하고,
직접 제 마음 속에서 끌어올린 것들로 촉촉하게 대답을 한 것들이 아닐까 합니다.
이와 달리, 외부에서 찾아 얻어낸 메마른 대답들은 촉촉함을 전혀 담아내지 못하지요.
–
스스로 느낀 촉촉한 질문과 의미들이 흥미로운 가장 큰 이유는,
이렇게 제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솟아오른 질문들을 깊이 사랑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온전히 저만의 질문이니까요.
만약 그러한 질문에 스스로 답을 내게 되면, 그 대답 또한 사랑하게 되지요.
완벽하지 않을 지는 모르지만, 그저 제가 스스로 낸 것이어서 사랑스러운 대답이지요.
–
사랑을 느낀 것들이 금방 잊혀질까요?
–
어차피 인공지능을 사용하지 않을 수 없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인공지능에게는 그저 ”메마른 의미“만 요구하세요.
”촉촉한 의미“까지 인공지능에게 요구하거나 의존하지는 마세요.
–
인공지능에게는 촉촉한 질문과 대답, 촉촉한 의미를 느끼고 말할 능력이 없습니다.
흉내만 낼 뿐이지요.
자신의 마음 속, 알 수 없는 어딘가에서 솟아나는 것들만이
우리의 마음을 촉촉하게 적셔주고 우리 자신의 정체성을 만들어 줄 수 있습니다.
–
완벽하게 정체를 설명할 수는 없지만 아름답고 촉촉한 것들,
어쩌면 우리는 이런 것들을 통해 우리의 존재를 스스로 가꾸어가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
아시나요?
인공지능과 달리 우리의 뇌는 촉촉하게 젖어 있습니다.
메마른 인공지능 때문에 촉촉함이 주는 특권을 놓쳐서는 안됩니다.
코멘트
““촉촉한 인공지능은 없습니다.”” 에 하나의 답글
[…] 더보기 >> “촉촉한 인공지능은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