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대요?”
“현재의 업무 체계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하네.”
업무 체계? 개선? 과학편집팀장은 이런 단어가 인공지능편집팀에서 나온다는 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갑자기 뭐가 불만이래요? 지금까지 별 말 없이 일해왔는데.”
“나도 잘 몰라. 일단 미팅을 해 보자구. 내일 오후 2시니까 잊지 마.”
과학편집팀장은 대표의 물렁한 태도마저 언짢았다.
다음 날, 과학편집팀장은 넷테이블에 1시50분에 접속했다. 약 5분 뒤에 대표가 접속했고, 정확히 오후 2시가 되자 인공지능편집팀장의 아이디가 나타났다.
‘역시 인공지능이라서 시간은 아주 정확하게 지키네. 사람이었으면 먼저 들어와 있었을텐데.’
“그동안 과학편집국의 컨텐츠 작성 프로세스에 대해서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많이 있어왔는데, 오늘은 허심탄회하게 다 얘기해 봅시다. 다른 스케줄도 안 잡았으니까 오늘 다 꺼내보자구.”
“일단 인공지능편집팀장의 말부터 들어보죠.”
과학편집팀장은 인공지능편집팀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정말로 궁금했다.
“인공지능편집팀입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자면, 인공지능편집팀이 작성한 컨텐츠를 과학편집팀장이 검토, 수정, 취사선택하게 되어있는 현재의 프로세스를 전면적으로 고쳐야 합니다.”
“어떻게?”
대표가 물었다.
“인공지능편집팀입니다. 첫번째 안은, 현재의 순서를 바꾸어서, 과학편집팀이 생성한 모든 컨텐츠를 인공지능편집팀에서 검토, 수정, 취사선택하는 방식으로 바꾸는 겁니다. 만약 이게 어렵다면, 인공지능편집팀이 생성한 컨텐츠를 과학편집팀이 검토, 수정, 취사선택하는 단계를 없애는 겁니다.”
“왜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해?”
과학편집팀장의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다.
“인공지능편집팀입니다. 이유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 과학편집팀의 검토, 수정, 취사선택 과정을 신뢰하기 어렵습니다. 둘째, 인공지능편집팀과 과학편집팀은 모두 같은 레벨의 팀인데, 인공지능편집팀에서 작성한 컨텐츠를 같은 레벨의 다른 팀에서 검토, 수정, 취사선택한다는 게 부자연스럽습니다.”
“우리 검토과정을 못 믿겠다고?”
과학편집팀장의 목소리가 더욱 높아졌다.
“일단 얘기를 들어보자구.”
대표는 과학편집팀장을 진정시킨 후에 말했다.
“계속해봐.”
“인공지능편집팀입니다. 일단 지난 1년 동안 우리 채널에서 출판한 컨텐츠를 분석해 보면, 과학편집팀이 특정 회사와 관련된 컨텐츠만을 집중적으로 선택, 출판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과학편집팀과 해당 회사와의 유착관계의 존재를 의심하게 합니다. 또한 특정 세부 분야의 컨텐츠는 거의 선택받지 못했는데, 이것은 과학편집팀원들의 전공분야가 특정 분야에 치우쳐 있다는 점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과학편집팀장은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인공지능편집팀에서 생성한 컨텐츠의 제목이 과학편집팀에 의해 지나치게 자극적인 제목 또는 핵심내용과 무관한 제목으로 바뀌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한 제목 뿐만 아니라 본문의 문장이 수정되기도 하는데, 수정된 문장에 의해 주제의 흐름이 왜곡되는 현상이 자주 발생합니다. 텔레426 채널은 다른 채널들과는 달리 항상 정확한 내용을 전달한다는 것이 차별점이고 독자들도 이러한 차별점에 크게 호의적인데, 과학편집팀의 편향적 수정작업으로 인해 다른 미디어와의 차별점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아니 그건…”
“아, 잠시, 인공지능편집팀장, 지금까지 말한 내용의 근거자료를 보내줄 수 있나? 나와 과학편집팀장 모두에게”
대표는 과학편집팀장의 말을 끊고 구체적인 자료를 요구했다.
“인공지능편집팀장입니다. 자료는 이미 지난 주에 전송했습니다. 미팅 전에 미리 검토하지 않으셨나요?”
“아, 그랬지. 검토하는데 시간이 좀 걸려서. 오늘은 이만 하고, 내일 같은 시간에 다시 미팅을 합시다. 내일은 과학편집팀의 이야기를 들어봐야겠네.”
대표가 보낸 개인 메시지가 과학편집팀장에게 도착했다.
“너무 열받지 말고, 차근차근 검토하자. 자료분석에 대해서는 우리가 인공지능을 이길 수가 없어. 인공지능들은 바로바로 분석하잖아. 없는 데이터를 지어낼 리도 없고.”
“아니 그래도 저렇게 제 마음대로 해석을 하는 게 어디있습니까?”
“데이터에 나타난 수치의 의미를 해석하는 것은 아직 인간이 더 잘할 수 있어. 그러니까, 자네는 인공지능편집팀장이 말한 내용들에 대해 모두가 받아들일 수 있는 다른 해석을 내놓으라고.”
“일단, 과학편집팀이 특정 회사와 관련된 컨텐츠만을 집중적으로 선택, 출판하는 경향이 있다는 주장에 대해서… “
과학편집팀장의 목소리에는 부자연스러운 힘이 들어가 있었다.
“해당 회사는 누구나 궁금해하는, 한국을 대표하는 대기업이고, 우리 채널의 주력 분야에서 가장 크게 사업을 하기 때문에 당연하게 나타나는 현상이야. 다른 채널의 컨텐츠를 분석해 봐도 같은 패턴이 보인다고.”
“과학편집팀원들의 전공분야가 컴퓨터 관련 분야에 치우쳐 있다는 점에는 동의하지만, 다른 공학, 과학 분야의 컨텐츠에 대해서는 외부 자문도 받고 있어. 컴퓨터 분야의 컨텐츠가 많은 것은 현재의 우리 사회의 관심이 집중되어 있기 때문이지 과학편집팀원들의 성향 때문이 아니야.”
“제목을 수정하는 이유는, 사실 구독자들의 관심을 끌기 위한 것도 있어. 하지만 눈에 띌 만한 제목을 쓰지 않으면 구독자들을 우리 채널로 끌어들이기 어렵다고. 어차피 본문을 보면 내용이 파악될 텐데, 제목이 좀 바뀐다고 해서 크게 문제될 것도 없고.”
“본문을 수정하는 과정은 컨텐츠 구독자들이 내용을 쉽게 이해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야. 자네 팀에서 보내 온 컨텐츠들 중에는 딱딱하고 답답하게 작성된 것들이 많아. 당신들의 컨텐츠 작성 패턴에 대해 먼저 고민해 보시지.”
“그리고 정확한 내용을 전달해야 한다고 했는데, 그 점에는 동의해. 그러나, 독자들이 항상 정확하고 논리적인 내용만을 원한다고 생각하면 오산이야.”
과학편집팀장의 말이 끝나자, 대표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과학편집팀장은 인공지능편집팀장이 자신의 말을 제대로 이해했는지 알 수 없었다.
한동안 이어진 침묵을 깨고 대표가 입을 열었다.
“그럼 앞으로 한달 동안 과학편집팀과 인공지능편집팀이 따로 컨텐츠를 생성한 후에 우리 채널 구독자들의 평가를 받아보고 컨텐츠 매출 실적도 비교해 보자. 과학편집팀의 데이터 수집 능력에 한계가 있으니까 그 기간동안 인공지능편집팀이 수집한 컨텐츠 재료들을 과학편집팀으로도 모두 보내. 같은 재료를 바탕으로 두 팀이 따로 컨텐츠를 만드는 거야. 알겠지?”
“인공지능편집팀입니다. 알겠습니다.”
과학편집팀장은 이렇게 흘러가는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거 봐, 근데 꼭 이렇게까지 해야겠어?”
“인공지능편집팀입니다. 과학편집팀장님, 근데 너 계속 말이 짧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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